2025년 현재, 글로벌 공급망은 과거의 효율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안정성과 전략적 자율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습니다. 팬데믹,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 복합 위기를 거치며 각국은 ‘자국 우선주의’와 ‘안보 중심 통상’을 전면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관세정책도 단순한 세수 확보 수단을 넘어 공급망 전략의 일환으로 재정립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관세정책이 글로벌 공급망 구조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으며, 주요 국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살펴봅니다.
공급망 위기와 관세정책의 전략적 전환
전통적인 공급망 모델은 효율성 극대화를 목표로, 비용이 낮은 국가로 생산과 조달을 집중시켜 글로벌 분업 체계를 형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의료 장비, 반도체, 식량 등의 필수 품목 수급 불안을 일으켰고, 이후 공급망 단절의 위협은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은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관세정책을 전략적으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전략은 ‘리쇼어링(Reshoring)’과 ‘니어쇼어링(Nearshoring)’입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도 자국 내 제조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특정 산업군에 대해 고율 관세를 유지하거나 부과하고 있으며, 해외 생산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 등 비관세 장벽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기업들로 하여금 원자재와 부품 조달처를 재검토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공급망 재배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관세정책은 이제 공급망에 내재된 리스크를 분산하거나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 도구로 활용되고 있으며, 특히 전략물자(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등)에 대해서는 수출입 세율을 탄력적으로 조정함으로써 산업 보호뿐 아니라 공급망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즉, 관세는 단순한 무역세가 아니라, 공급망을 통제하는 지렛대가 되고 있습니다.
주요국의 공급망 재편과 관세 정책 변화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의료 장비 등 핵심 분야를 중심으로 ‘공급망 복원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2025년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경제 디커플링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으며, 특정 품목에 대해 고율 관세를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한편, 우방국과의 공급망 협력 강화를 위한 통상 협정을 추진 중입니다. 또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를 통해 친환경 산업 생산을 자국 내에 유도하며, 해당 산업군의 수입품에 대해서는 관세 또는 세제 차별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EU는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통상 정책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공급망 상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기 위한 산업 정책과 관세 조치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된 원자재 및 셀 생산을 유럽 내로 유도하기 위해 수입품에 대한 환경 기준 강화와 함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하였으며, 이는 관세 형태의 환경 규제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반대로 ‘내순환 중심 경제 전략’을 강화하면서, 자국 내 생산 확대와 함께 수출입 관세율 조정을 통해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기술 독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반도체, AI, 전력장비 등 전략 산업의 수입관세를 인하하고, 동시에 기술이전이 어려운 품목에 대해 수출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공급망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인도, 베트남, 멕시코 등은 FTA를 적극 활용해 제조기지를 유치하고 있으며, 관세 감면과 비관세 장벽 완화를 통해 공급망 허브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관세와 공급망의 미래: 산업별 전략 변화
관세정책은 공급망의 흐름을 조절하는 강력한 경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산업별로 다른 공급망 구조와 전략적 민감도를 고려할 때, 관세정책은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의 중간지점에서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 산업은 고도의 기술 집약성과 글로벌 협업이 요구되는 분야로, 미국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규제 및 고율 관세를 유지하며, 한국·대만·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관세정책은 단순히 보호수단이 아닌 ‘블록 간 공급망 재편’의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미국은 북미 중심의 생산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USMCA 내 원산지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멕시코, 캐나다와의 공급망을 견고히 하는 동시에 외부국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는 관세정책을 이용한 지역 공급망 형성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에너지, 의약품, 농산물 등 필수재 산업에서는 관세와 수출입 통제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는 인식이 강화되면서, 공급망 안정성 확보 차원에서 더욱 정교한 관세 전략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향후 관세정책은 산업·기후·기술·안보를 아우르는 통합 정책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결론: 관세는 공급망 설계의 지렛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더 이상 기업 차원의 전략이 아니라, 국가 정책의 핵심 과제가 되었습니다. 관세정책은 이러한 공급망 설계에서 조정 장치로 기능하며, 전략 산업 보호, 리스크 분산, 산업 생태계 재구축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활용되고 있습니다.
2025년 이후의 공급망 정책은 ‘지정학적 공급망 블록화’라는 구조적 변화를 동반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관세정책은 점점 더 복합적이고 산업 특화된 형태로 발전할 것입니다. 각국은 자국 우선주의와 글로벌 협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며, 이에 따라 관세정책은 단순한 무역세를 넘어 전략적 산업정책의 일부로 기능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공급망을 안정화하고 고도화하는 데 있어 관세정책은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았으며, 앞으로도 국가 간 협력과 경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중요한 전략수단으로 지속 활용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