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서비스 무역은 전통적인 상품 무역과는 달리, 데이터 기반의 클라우드, 스트리밍, AI 솔루션, 소프트웨어 플랫폼 등 무형 자산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거래를 의미합니다. 2025년 현재, 전 세계 GDP의 30% 이상이 디지털 기반 무역에서 발생하며, 디지털 서비스는 산업 전반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무역은 아직 명확한 국제 규범이 정립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정책이나 과세정책을 독자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디지털 서비스 무역의 특성과 함께, 관세정책이 이 분야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으며, 국제 규범과 갈등하는 지점은 무엇인지 분석해봅니다.
WTO 전자상거래 모라토리엄 종료와 관세 논의의 본격화
WTO는 1998년부터 전자적 방식으로 전송되는 상품과 서비스(예: 음악, 동영상, 소프트웨어 등)에 대해 ‘관세 부과 유예 조치(전자상거래 모라토리엄)’를 시행해 왔습니다. 이 조치는 매 2년마다 갱신되어 왔으나, 2024년 말 개발도상국 중심의 반대에 따라 연장이 불발되었고, 2025년부터는 각국이 전자적 전송 서비스에 관세를 자율적으로 부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소프트웨어, 게임, OTT 콘텐츠 등 수입 디지털 서비스에 대해 일정 수준의 관세를 도입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세수 확보 및 자국 산업 보호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 EU, 일본 등은 디지털 서비스의 자유로운 흐름을 지지하며, 관세 도입은 글로벌 무역 질서를 저해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WTO의 전자상거래 규범 논의 지연과 맞물려, 글로벌 디지털 서비스 기업의 진입 전략과 가격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넷플릭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AWS 등 미국계 플랫폼 기업은 특정 시장에서 관세 또는 디지털세 이중 과세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으며, 이에 따라 글로벌 디지털 무역은 새로운 통상 환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디지털세(DST)와 사실상의 관세 효과
디지털세(Digital Services Tax)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각국에서 수익을 창출하면서도 조세를 회피하거나 납세 비중이 낮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과세 방식입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영국, 인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은 디지털 광고, 스트리밍, 플랫폼 수수료 등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 일정 비율의 디지털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 세금은 일종의 ‘서비스 사용료’ 또는 ‘시장 접근 대가’로 간주되며 사실상 관세와 유사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2025년 현재, OECD 주도로 추진된 디지털세 국제 과세 기준(소위 '필라 1·2')은 도입이 지연되며, 개별 국가의 독자적인 DST 도입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국가별로 상이한 세율과 과세 기준에 대응해야 하며, 이중 과세, 서비스 가격 인상, 사업 축소 등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디지털세를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로 간주하며, 해당 국가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거나 무역 보복 조치를 시사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디지털세는 세금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디지털 서비스의 무역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비관세 장벽’ 혹은 ‘정책형 관세’로 작동하고 있으며, 통상 갈등의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결국 디지털세와 관세정책은 점점 경계를 허물고 융합되고 있으며, 향후 디지털 서비스 무역 규범이 정립되지 않는 한, 각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조합의 조세·관세 전략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데이터 이전·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관세 정책 가능성과 대응
디지털 서비스 무역은 기본적으로 ‘데이터 흐름의 자유’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국가는 데이터 주권과 사이버보안, 개인정보 보호를 명분으로 데이터의 역외 이전을 제한하거나,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해 로컬 서버 설치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제는 법적 규제인 동시에, 외국 기업에 대한 무형의 무역 장벽이자, 특정 국가의 디지털 서비스 진입을 제한하는 간접적 관세 효과를 유발합니다.
예를 들어, 인도는 2024년부터 특정 금융 및 헬스케어 데이터를 인도 내 서버에 저장하도록 의무화했으며, 이로 인해 외국계 클라우드 기업은 별도의 인프라 투자를 해야만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더욱 강력한 ‘인터넷 보안법’과 ‘데이터 보안법’을 통해 데이터의 국경 간 이전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며, 해외 SaaS 서비스에 대해 사실상의 시장 폐쇄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EU는 GDPR을 통해 데이터 이동을 엄격히 규제하면서도, 역내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고려해 표준계약조항(SCC) 등 예외 조항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일본, 한국 등 디지털 경제 중심국은 ‘데이터 자유 흐름(Free Flow of Data)’ 원칙을 고수하며, WTO 전자상거래 협정에서 이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지털 보호주의 조치들은 관세가 없는 대신, ‘규제 관세(regulatory tariff)’ 또는 ‘접근 비용(access cost)’이라는 형태로 외국 기업의 비용 구조에 영향을 미치며, 결국 디지털 서비스 가격에 전가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디지털 서비스 무역에서는 관세 외적 요인이 더욱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통상정책과 규제정책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론: 디지털 무역에 관세는 없는가?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디지털 서비스 무역은 전통적 상품 무역과 달리 물리적 국경이 없는 거래지만, 2025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장벽’은 점점 강화되고 있습니다. 관세정책은 더 이상 세율로만 정의되지 않으며, 디지털세, 데이터 규제, 서버 설치 의무, 라이선스 요건 등의 복합적 정책이 사실상의 관세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전자상거래 모라토리엄 종료와 함께,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직접적 관세 부과 가능성이 열린 지금, 디지털 서비스 무역의 자유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각국은 자국 플랫폼 보호와 세수 확보를 위해 디지털 무역을 규제하려 하며, 반면 다자협력은 지연되고 있어 글로벌 기업들은 국가별 대응 전략 수립이 필수화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디지털 무역 시대의 관세정책은 ‘규제와 통상, 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유형의 무역 전략’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향후 WTO, OECD, G20 등에서 이에 대한 통합 규범 마련이 시급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