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은 국가 간 협력과 경쟁의 핵심 분야로 부상했으며, 이에 따라 AI 관련 기술표준의 국제화가 글로벌 통상과 외교정책의 핵심 의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2025년 현재, 미국, EU, 중국 등 주요국은 자국의 기술적 우위와 가치체계를 반영한 AI 기술표준을 국제무대에 반영하기 위해 ISO, ITU, OECD, WTO 등의 다자기구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술의 안전성, 투명성, 상호운용성, 윤리성, 데이터 처리 방식 등 다양한 분야의 세부 기준을 놓고 국가 간 이해 충돌이 발생하고 있으며, 국제 표준화의 방향성과 범위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AI 기술표준의 국제화 배경, 주요 국가별 전략, 그리고 표준경쟁이 가져올 통상 및 산업적 함의를 종합 분석합니다.
국제 AI 기술표준 수립의 필요성과 주요 쟁점
AI 기술표준은 알고리즘 구조, 학습 데이터 처리, 결과 해석 방식, 윤리 기준, 안전성 검증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합니다. 이러한 표준은 기술의 상호운용성과 안전한 글로벌 확산을 위한 기반이 되며, 동시에 특정 국가나 기업이 자국 기술을 ‘글로벌 기준’으로 만들어 시장 장악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도 작용합니다.
AI 기술의 국제표준화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적인 관점으로, 다양한 AI 시스템 간의 연동 가능성, 신뢰성 확보, 해석가능성 등을 위한 공통 프로토콜 마련입니다. 다른 하나는 윤리적·정책적 관점으로, 알고리즘의 편향 방지, 프라이버시 보호, 인간 중심 설계 원칙 등을 포함한 책임 기반 표준입니다.
현재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통신연합(ITU), OECD AI 원칙, G7 AI 가이드라인 등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술표준은 대부분 자율성(Self-regulation)과 최소 규제(Minimal Burden)를 원칙으로 하지만, 국가마다 이해관계가 상이하여 통일된 기준 마련에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특히 AI 안전성 인증, 검증 절차, 윤리 기준의 적용 범위 등에서 미국과 EU, 중국의 입장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 EU, 중국의 AI 기술표준화 전략 비교
미국은 AI 기술의 혁신성과 시장 확산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민간 주도의 자율규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NIST(미국표준기술연구소)를 중심으로 ‘AI 리스크 관리 프레임워크’를 수립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신뢰성 평가 체계와 투명성 기준을 국제적으로 확산하려는 전략을 구사 중입니다. 또한, ISO 및 OECD 내 표준화 논의에서 자율성과 시장친화적 기준 도입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EU는 2024년 AI법(AI Act) 통과 이후, 해당 법의 핵심 요소를 국제표준으로 수출하는 전략을 본격화했습니다. ENISA(유럽사이버보안청), ETSI(유럽전기통신표준기구) 등과 연계해 AI 기술의 위험 등급 분류, 설명가능성 요구, 사전검증 절차 등을 표준화하려는 시도를 확대하고 있으며, G7 및 OECD 내 AI 규범 논의에서도 윤리성과 투명성을 강화한 기준 도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국가중심 기술통제를 기반으로 AI 시스템의 공공 안전성, 정치적 안정성, 사회적 조화에 초점을 맞춘 표준 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국가표준총국(SAC), 인터넷정보판공실(CAC)을 통해 자국 표준을 ISO 및 ITU 등에 제출하고 있으며,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디지털 주권’ 모델을 확산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AI 모델의 사전 심사, 콘텐츠 필터링, 사용자 실명 인증 등 통제형 요소를 포함한 기술표준을 국제화하려는 노력이 특징적입니다.
AI 표준화 경쟁의 통상적 파장과 한국의 대응 전략
AI 기술표준이 국제무역과 기술 교역의 새로운 장벽 또는 경쟁우위 요소로 작동하면서, 이로 인한 통상적 파장도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특정 국가의 AI 기술이 글로벌 표준으로 채택될 경우, 타국 기업은 해당 기준을 따라야 하며, 이는 기술 설계, 제품 인증, 수출입 절차, 알고리즘 구조 자체를 변경해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AI 기술이 포함된 제품(예: 스마트기기, 자율주행차, 헬스케어 기기 등)의 글로벌 유통을 위해서는 기술표준 적합성 인증이 필수이므로, 미국·EU·중국 중 어느 기준을 따를지가 전략적 선택이 됩니다. 이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대기업에게는 R&D와 규제 대응 비용 증가로 이어집니다.
한국은 AI 기술력과 인프라에서 선진국 수준을 갖추고 있으나, 국제표준화 논의 참여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최근 정부는 ISO, ITU 등 국제기구 내 AI 표준화 위원회 참여를 확대하고 있으며, 국가 AI 테스트베드 구축, AI 인증제도 시범 운영 등을 통해 자국 기술의 국제적 정합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추진 중입니다.
향후 한국은 미국·EU·중국 중 한 축에 편입되기보다는 다자주의 기반 협력, 동맹국 공동 기준 개발, 국내 기술의 국제표준 반영 등을 통해 ‘표준 수용자’가 아닌 ‘표준 제안국’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 기술표준은 글로벌 AI 경쟁의 핵심 전장이 된다
AI 기술표준의 국제화는 단순한 기술적 합의가 아닌, 국가 간 기술주권과 산업통상 전략이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입니다. 2025년 현재 AI는 ‘어떤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보다 ‘어떤 기준을 따르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경쟁 요인이 되었으며, 이를 선점한 국가가 글로벌 시장과 규범을 동시에 지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러한 표준경쟁에서 기술력뿐만 아니라 외교력, 제도 설계 능력, 국제협력 네트워크 등 복합적인 역량을 동원해 ‘기술표준 외교’를 강화해야 하며, 국내 기업 역시 다양한 기준에 대응 가능한 다중 표준 전략, 기술 인증 준비, 글로벌 표준화 참여 등을 통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AI 기술표준은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질서의 새로운 규칙입니다.